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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사우디 비전 2030 & 일대일로 & BRICS(브릭스)

by 부자섭 2025.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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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4일, 세계 유수의 신문 1면에는 환한 미소로 운전대를 잡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모습이 실렸다. 그날은 사우디가 여성 운전을 전면 허용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오랫동안 여성의 운전을 금지해 왔던 세계 유일의 국가였던 사우디가 드디어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극도로 보수적인 율법 체계를 유지해 온 사우디는 오랜 기간 여성 차별과 인권 문제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존의 금기를 하나씩 깨뜨리며 ‘변화하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있다. 그는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로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의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2019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했을 당시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일제히 그를 맞이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빈살만은 2016년 4월, 사우디의 미래를 설계한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라는 세 가지 기조를 바탕으로 전 분야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특히 경제 구조의 탈석유화가 핵심이다. 석유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중심의 경제 성장을 통해 새로운 성장엔진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비석유 부문 수출의 GDP 비중을 2016년 기준 16%에서 2030년까지 50%로 끌어올리고,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경제 비중 역시 40%에서 65%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상장을 통해 마련된 자금을 첨단기술과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에 투자하며, 여성과 청년의 고용 확대, 직업훈련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셰일가스 혁명으로 인한 석유 패권 약화, 40%에 달하는 청년실업 문제 등 사우디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로 평가된다. 빈살만 주도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덕분에 내부 저항 없이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문화 산업 육성 등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의 국제적 이미지는 엇갈린다. 내부적으로는 개혁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외부에선 권위주의적 통치와 반대 세력 탄압 등으로 인해 ‘독재자’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특히, 2018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관련해 빈살만이 배후에 있다는 의혹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우디의 미래 구상이 현실이 될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편,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 대학 강연에서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을 제시하며 새로운 전략을 알렸다. 고대 동서 문명을 잇던 실크로드를 현대에 되살려, 육상과 해상 모두를 아우르는 거대한 경제 프로젝트로 재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음 달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그는 해상 실크로드의 필요성도 강조하며, 육·해를 모두 포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공식화했다.

일대일로는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일대’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경로, ‘일로’는 동남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연결되는 해상 루트를 의미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각국에 도로, 철도, 송유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항만과 공항까지 건설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이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했다. 2016년 출범한 AIIB는 교통, 에너지, 통신, 수자원 개발 등에 투자하며 70개국(2019년 기준)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다. 일대일로는 2049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성공적으로 구축된다면 약 30억 명을 포괄하는 거대한 경제 공동체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순탄치 않다. 초기에는 중국의 투자를 환영하던 국가들이, 공사 후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게 되자 입장을 바꾸게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전체 공사비의 80%를 중국에서 차입해 이자 부담에 시달리고 있으며, 네팔은 수력발전소 건설을 스스로 하겠다고 선언했고, 말레이시아는 철도사업 자체를 중단시켰다. 중국이 경제협력이라 주장하지만 이익은 대부분 중국 기업이 챙기고, 주변국은 경제적 종속에 내몰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일대일로 견제에 나서고 있다. 일대일로가 진정한 협력체계로 자리 잡을지, 중국의 야망에 불과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중국의 이런 팽창 전략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굴기’다. 이는 ‘우뚝 일어선다’는 뜻으로, ‘5G 굴기’, ‘AI 굴기’, ‘수소차 굴기’처럼 특정 산업에서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설명할 때 쓰인다.

한편,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한 틈을 타 주목받게 시작한 국가들이 있었다. 바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다. 이 네 나라의 앞 글자를 따 ‘브릭스(BRICS)’라는 용어가 탄생했고,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합류하며 다섯 나라의 경제 협력체로 확대되었다. 이들 국가는 넓은 영토, 풍부한 자원, 인구 등의 공통점을 지니며, 향후 글로벌 경제를 이끌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으로 분류되었다.

2000년대 들어 브릭스 국가로 외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 국가에 투자하는 ‘브릭스 펀드’가 인기를 끌었다. 2009년부터는 정례 정상회의가 열리며 정치적 협력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순항한 것은 아니다. 인도를 제외한 국가들은 경기 침체, 성장률 둔화, 정치 불안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골드만삭스 내부에서도 한때는 “브릭스 시대는 끝났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5개국 인구를 합치면 전 세계 인구의 40%를 넘고, 비서구권 중심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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