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와 SDR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에 처한 국가에 자금을 지원하는 일종의 '글로벌 중앙은행' 역할을 수행한다. IMF가 발행하는 특별한 통화인 SDR(특별인출권, Special Drawing Rights)은 이러한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달러를,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화를 찍어내듯, IMF도 SDR이라는 자체 통화를 발행한다. 다만 SDR은 개별 국가 화폐와 달리 실물이 존재하지 않으며, IMF와 회원국의 정부나 중앙은행 간 거래에서만 활용되는 가상통화다.
IMF는 1945년 창설 초기에는 금과 달러만으로 국제 결제를 처리했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이 확대되면서 기존 자산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키게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1969년 SDR이라는 새로운 통화 체계를 도입했다. 각 회원국은 IMF에 출자한 금액에 비례해 SDR을 배정받고, 이 범위 내에서 인출 및 사용이 가능하다. 실물이 없는 만큼 SDR로 거래할 경우 실제로는 달러 등 실물 통화로 전환해 수취한다. SDR 보유분은 각국의 외환보유고로 간주한다.
SDR의 가치는 다섯 개 주요 통화의 가중평균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구성은 '통화 바스켓' 모델의 대표적 사례로, 현재는 미국 달러(41.73%), 유로(30.93%), 중국 위안(10.92%), 일본 엔(8.33%), 영국 파운드(8.09%)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SDR 통화 바스켓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높은 신뢰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2015년 위안화가 SDR에 편입된 것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국제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 원화 역시 무역 규모와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SDR 편입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로부터 155억 SDR을 차입했고, 이를 통해 약 201억 달러를 확보한 바 있다.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2008년 10월 31일, 암호학 관련 전문가들은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미확인 인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 메시지에는 중앙기관 없이 개인 간(P2P) 직접 거래가 가능한 디지털 화폐 시스템에 관한 9페이지 분량의 보고서가 첨부돼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었다. 2017년에는 한국에서도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한 투자 열풍이 일며 대중 인식이 급속히 확산했다.
암호화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발행한다. 둘째, 실물 없이 전자적으로 존재한다. 셋째, 블록체인이라는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이론적으로 위변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가상화폐'라는 용어와 혼용되지만, 기술적 엄밀성 측면에서는 비트코인과 같은 사례는 ‘암호화폐’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가상화폐'는 포인트, 마일리지 같은 실체 없는 디지털 자산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가상통화'라 부르며 공식 화폐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비트코인의 등장 이후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리플 등 수많은 암호화폐가 생겨났고, 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알트코인(alt coin)'으로 불린다. 이들 중 지금까지 비트코인의 영향력을 능가한 코인은 없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들은 종종 자금을 모으기 위해 ICO(가상화폐 공개)를 진행하며, 이는 기존 금융시장 기업공개(IPO)를 모방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발행한 암호화폐가 거래소에 상장되면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ICO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부재하고 검증도 어려워 사기나 피해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암호화폐는 첨단 기술로 미래 금융을 혁신할 수 있다는 기대와 동시에 투기나 사기의 온상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의 급락 이후 전반적인 시장은 위축됐지만, JP모건, 메타(구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이 관련 사업에 진출하면서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화폐보다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축통화와 달러의 위상
세계 각국은 저마다 자국 화폐를 운영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는 단연 미국 달러다. 전 세계 무역의 절반 이상, 외화보유액의 약 60%가 달러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느 국가에서도 손쉽게 환전이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일부 국가는 자국 통화를 포기하고 달러를 직접 사용하는 '달러라이제이션' 현상까지 나타난다.
기축통화는 단순히 경제력만으로 확보되는 지위가 아니다. 군사력과 외교력, 정치적 안정성 등 국가의 총체적 영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과거 로마제국의 통화나 대영제국 시기의 파운드화처럼, 국제적 신뢰와 유통량이 보장되어야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러는 글로벌 결제와 무역의 중심이 됐다. 유로화와 위안화도 잠재적인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유로존의 불안정성과 회원국 간 분열, 중국 정부의 엄격한 자본 통제는 이들 통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 결과,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그 지위는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역화폐의 확산과 과제
한국 내에서 공식 통화와 별개로 지역화폐가 확산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방자치단체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으로, 주로 지역 내 소비를 촉진하고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됐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 수는 2016년 53곳에서 2019년 177곳으로 급증했으며, 발행 금액도 같은 기간 1168억 원에서 2조 257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과거에는 종이 상품권 형태가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전자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역화폐는 소비를 지역 내에 묶어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며, 신용카드 수수료가 없어 소상공인에게 유리한 장점이 있다. 특히 농촌이나 소규모 도시처럼 대형 유통망이 부족한 지역에서 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비판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지역화폐는 예산을 들여 할인이나 캐시백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 부담은 고스란히 지자체가 안고 있다. 사용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고가 상품 구매나 현금화(일명 '깡')에 악용되는 사례도 있다. 카드나 앱 기반 지역화폐는 보안 문제도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지역화폐는 실질적인 화폐라기보다는 복지 성격의 지역 소비 촉진 수단에 가깝다. 신중한 수요 예측 없이 무분별하게 발행할 경우 지방 재정만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를 밑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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