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는 고객이 맡긴 예금이 대규모로 유입된다. 이 자금을 단순히 보관만 해서는 약속된 이자를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은행은 대출이나 투자 등으로 이를 운용해 수익을 창출한다.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대출과 예금 사이의 금리 차이로 생기는 이익을 ‘예대차익’이라 하며, 이는 은행의 핵심적인 수입원이다. 예금 전액을 대출에 활용하면 수익 극대화가 가능하지만, 중앙은행은 이를 제한한다. 예금자는 언제든 돈을 인출할 수 있으므로, 일정 비율은 비상 자금으로 남겨두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때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하는 자금의 비율이 ‘지급준비율’이며, 줄여서 ‘지준율’이라고 부른다. 이 지준율은 기준금리만큼 자주 조정되진 않으며, 2018년 3월 이후 국내 은행들은 예금 종류에 따라 0~7%의 지준율을 적용받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지준율이 높을수록 대출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고, 중앙은행에 맡긴 준비금에는 이자도 붙지 않아 불리하다.
지급준비제도는 원래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실제로는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는 정책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었다. 중앙은행이 지준율을 조정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자금의 양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는 1980년대 이후 통화정책의 중심이 통화량에서 금리 조절로 옮겨가면서 지준율의 역할이 다소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은 여전히 지준율 조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지속해서 인하 조처를 하고 있다.
요즘 국내 은행 금리가 낮다는 불만이 많지만, 월급통장에 예금만 해도 연 0.1% 정도의 이자는 지급된다. 그러나 만약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예금을 하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관 수수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돈을 빌릴 경우 이자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정 금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이너스 금리’는 이미 일부 국가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마이너스 금리는 말 그대로 기준금리가 0%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초과 지급준비금에 수수료를 부과함으로써 은행들이 자금을 쌓아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출과 투자를 통해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2012년의 덴마크이며, 이후 2014년 유럽중앙은행과 스위스, 2015년 스웨덴, 2016년 일본 등이 뒤를 이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명목금리 자체가 음수가 되는 일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이 이어지면서 나타난 전례 없는 금융정책의 하나다.
보통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 간 거래나 중앙은행 예치금에만 적용되며, 일반 고객의 예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개인과 기업의 예금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금융 시스템 전반에 충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스위스에서는 -0.125%의 금리를 적용한 개인 예금 상품이 출시되었고, 덴마크에서는 원금보다 적게 갚아도 되는 대출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파격적 정책은 경기 부양의 극단적 수단이지만, 부작용도 존재한다. 시중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되면서 가계부채가 급속히 증가하는 등의 현상이 그 예다. 실제로 스웨덴은 부동산 가격 급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2019년에 기준금리를 다시 0%로 되돌렸다. 마이너스 금리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한다. 그는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한 인물에게 살을 떼어내겠다고 주장하지만, 법정에서는 "피를 흘리지 말고 살만 베어내라"는 판결이 내려져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처럼 과도한 이자를 요구하는 사채업은 과거에도 사회 문제였고, 오늘날에는 이를 막기 위해 ‘법정 최고금리’라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업법과 이자제한법을 통해 연 24%를 넘는 이자 부과를 금지하고 있다(2020년 기준). 이를 초과한 이자는 무효이며, 이미 낸 이자도 돌려받을 수 있다. 금융권 대출만 아니라 개인 간의 금전거래에도 이 기준은 적용된다.
미국 일부 주, 영국, 프랑스, 일본 등도 법으로 최고금리를 정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들은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며 대출자의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 정부가 이 제도를 운용하는 이유는 신용이 낮은 서민층이 고금리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시장가격에 대한 정부 개입이기도 해서, 일부 부작용도 존재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2002년 66%였던 법정 최고금리가 2018년 24%까지 낮아지는 과정에서 대부업체 약 일만 곳이 문을 닫았고, 이 중 일부는 불법 사채업자로 전환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처럼 부작용을 줄일려면 제도 설계의 정밀함이 중요하다.
한편 금융기관 간에 여유자금이나 부족 자금을 하루 단위로 주고받는 시장을 ‘콜시장’이라 하며, 이때 결정되는 금리를 ‘콜금리’라고 한다. 콜금리는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단기자금의 수급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금융시장 전반의 흐름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여겨진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통해 전체 금리 흐름을 조절할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이 콜금리다. 이후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등에도 영향을 미치며 실물경제에 파급된다.
한편, 런던 금융시장에서 신뢰도 높은 은행 간 단기자금 거래에 적용되던 금리를 ‘리보(LIBOR) 금리’라고 한다. 이는 정부 개입 없이 민간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금리로 오랫동안 세계 금융시장의 표준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나 2012년 일부 대형 은행들이 밀약해 금리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며 큰 신뢰 위기를 맞았다. 이에 따라 영국은 2021년까지 리보금리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했고, 이는 국제 금융 질서에서 50년 만의 대변화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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