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의 자유무역을 제약하는 인위적 조치를 무역장벽이라 부른다. 이 장벽을 최대한 없애자는 것이 자유무역주의, 반대로 탄탄하게 쌓자는 것이 보호 무역주의다. 무역장벽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크게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으로 나눌 수 있다.
관세장벽은 수입품에 물리는 세금, 즉 관세를 활용한다. 해외 여행길에 명품을 발견하고도 공항에서 관세 낼 것이 부담스러워 포기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업이 외국에서 들여오는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도 수입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관세는 품목, 수량, 용도 등에 따라 달리 매길 수도 있어 각국의 통상정책에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경제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관세들을 탄력관세라 한다.
할당관세는 물가 안정, 산업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세율을 한시적으로 낮춰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삼겹살, 계란, 설탕 등의 가격이 급등할 때는 관세를 0%로 낮춰 수입을 촉진한다. 반면 조정관세는 취약 산업 보호, 세율 불균형 개선 등을 목적으로 세율을 한시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국내 농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새우젓 등에 비싼 관세를 물리는 게 대표적이다. 긴급관세는 특정 물품의 수입이 급증해 피해를 봤을 때 부과하는 탄력관세다. 계절관세는 특정 기간에만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것으로 농산물에 주로 활용된다. 감귤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산 오렌지에 대해 9~2월엔 50%, 3~8월엔 30% 관세를 물리는 식이다.
상계관세는 특정국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은 물품이 수입될 때, 반덤핑관세는 수입품이 국내에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에 들어올 때 국내 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추가로 물리는 관세다. 세계적으로 공급 과잉 상태인 철강과 화학 제품이 급증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볼 때 수입을 임시 제한하거나 관세를 인상하는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말한다. 선진국은 잘 쓰지 않는 규제인데, 미국은 2017년 한국산 세탁기에 최대 50% 관세를 물리는 세이프가드를 16년 만에 발동했다.
보복관세는 다른 나라에서 불이익을 받았을 때 맞불을 놓기 위해 그 나라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물리는 것이다. 관세장벽을 높이는 게 나라 경제에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30년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2만여개 품목에 사상 최고 관세율을 적용한 '스무트-홀리법'을 발호했다. 그러자 영국 등 23개국이 보복관세를 매기면서 '관세전쟁'이 불붙었다. 결과는 모두의 패배로 끝난다. 세계 무역액은 4년 만에 3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대공황을 맞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0% 이상 급감했다.
비관세장벽은 관세를 뺀 나머지 모든 무역 제한 조치를 통칭하는 말이다. 수입품에 대한 수량 제한, 가격 통제, 유통경로 제한 등을 비롯해 자국 품목에 대한 보조금 지급, 외국인에 대한 투자, 정부조달 참여 제한 등이 모두 해당한다. 통관, 위생검역 등 행정절차를 까다롭게 해 간접적으로 수입을 억제하는 것도 비관세장벽이다. 중국은 외국 제품을 통관할 때 포장지의 깨알 같은 글씨까지 온갖 꼬투리를 잡아 퇴짜를 놓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WTO 보고서에 따르면 비관세장벽에 빈번하게 활용되는 것은 기술과 검역이다. 예를 들면 국제표준을 인정하지 않고 그 나라에서만 쓰는 인증마크를 획득할 것을 요구하거나, 서류작업과 검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수출업체에 대한 큰 부담이다. 식품을 수출하기 전 제품 검사를 받고, 판매 허가를 받은 뒤, 사후 검역을 또 요구하는 나라도 있다. 수량 제한은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내긴 하지만 너무 대놓고 티가 나기 때문에 요즘은 많이 쓰이지 않는다.
비관세장벽은 국제적으로 통일된 분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객관적으로 입증하기도 어려워 국제기구를 통한 관리 감독에 한계가 있다. 특히 비관세장벽을 쌓은 국가가 국민 안전, 환경 보호 등과 같은 공공성을 근거로 들면 반박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경제학의 기본 개념 중 하나로, ‘일물일가의 법칙’(Law of One Price) 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개념은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가 제시한 것으로,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동일한 상품이 어디에서나 같은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물론 실제 시장에서는 지역이나 시간에 따라 가격 차가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곧 재정거래(arbitrage)를 유도하게 된다. 즉, 가격이 낮은 지역에서 물건을 구매해 높은 가격의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시장 간 가격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결국 하나의 가격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것이 제번스가 설명한 일물일가 법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법칙이 현실에서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산 발포 비타민이 한국에서는 7~8배 비싼 가격에 팔린 경우가 있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일물일가 법칙이 전제하는 ‘완전경쟁’이 실제 시장에서는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는 운송비, 관세, 규제 등 여러 비관세장벽이 존재한다. 또한 동일한 품질의 국산 제품이 있음에도, 일부 소비자들은 특정 유럽 브랜드에 대한 신뢰나 선호로 인해 더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수입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요인들이 실제 가격 차이를 만들어내며, 일물일가 법칙이 현실에서 쉽게 적용되지 않는 배경이 된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국가 간 무역 장벽이 낮아지면서 같은 상품의 국가별 가격 차이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물류 기술의 발전으로 운송비용이 감소하고, 다양한 자유무역협정(FTA)의 체결로 관세 부담도 완화되고 있다. 2010년대 초, 해외 직구 열풍이 불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직접 저렴한 해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시작하자, 여러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의 판매 가격을 인하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비록 완벽하게 일물일가의 상태에 도달하진 않았지만, 유통 구조는 그 방향으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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